5회: 달리기와 명상의 공통점
마음을 달래는 움직임의 시간
달리기를 계속해오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걷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잠시 멈춰 있는 걸까.”
발은 분명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은 고요해지고, 생각은 또렷해지고, 감정은 조용히 정리되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경험하는 이 고요함이, 바로 ‘명상’과 닮아 있다는 사실을요.
이 글은 그런 느낌의 기록이자, 마음의 흐름을 따라 써내려간 한 편의 소소한 에세이입니다.
1. 몸이 움직이는데 마음이 멈춘다
우리는 흔히 명상이라 하면 조용한 방에서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은 채 호흡에 집중하는 모습을 떠올립니다. 정적인 상태 속에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하지만 꼭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까요?
달리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역설적으로 몸이 움직일수록, 마음은 멈추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주변의 소음이나 머릿속의 잡생각들이 어느 순간 흐릿해지고, 나의 숨소리, 발걸음 소리, 일정한 리듬만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리듬이 점점 깊어질수록 생각은 단순해지고, 감정은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며,
나는 조금씩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고 있었던 겁니다.
2. 반복되는 리듬이 만들어주는 심리적 안정감
달리기를 하다 보면 "패턴"이라는 것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달릴 때마다 일정한 호흡을 유지하려고 하고, 발을 땅에 딛는 간격을 비슷하게 맞추려고 합니다. 이는 단지 운동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게 아니라,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호흡과 걸음걸이, 그리고 그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반복적인 움직임은 마치 명상에서 반복적으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 훈련과도 닮아 있습니다.
어떤 날은 달리기가 끝난 후에 무언가 대단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은 채 그저 가볍게 비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 모든 흐름이 ‘괜찮다’고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시간의 특별함인 것 같습니다.
3. 생각의 소음이 줄어들고, 감정이 정리된다
살다 보면 마음속이 너무 시끄러운 날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 미뤄놓은 일, 엉킨 인간관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
그런 날에는 도무지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서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곤 합니다.
그럴 때 운동화 끈을 조용히 묶고 밖으로 나가 걷거나 달리기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면 조금씩 변화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생각의 소음이 차분해지고, 그다음엔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가 명확하게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내가 요즘 불안했구나."
"그 말이 서운했었구나."
"이걸 꼭 지금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렇게 달리기를 하면서 억눌려 있던 감정이나 무심코 흘려보냈던 감정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명상이 그렇듯, 달리기도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차리는 시간’인지도 모릅니다.
4.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집중하는 시간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주변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히려 내 몸의 상태나 마음의 움직임에 더 민감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숨이 가쁜지, 무릎은 괜찮은지, 오늘은 어떤 기분으로 달리고 있는지.
이런 집중은 ‘밖’을 향한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안’을 향해 다시 시선을 돌리는 경험이 됩니다.
명상에서 눈을 감고 스스로의 내면을 바라보듯, 달리기 또한 나의 감각에 다시 깨어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주변이 조용하고, 해가 지는 시간대에 달릴 때면, 자연스럽게 내면으로 향하는 흐름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이나 피로가 조금씩 씻겨 나가는 것 같은 감각도 함께 따라옵니다.
5. 혼자인 시간이지만 외롭지 않다
혼자서 달리는 시간은 많은 이들에게 외로울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혼자일 수 있어서 더 편안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었고, 기록을 세우기 위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어디까지 가야 한다는 부담도, 얼마나 빨라야 한다는 조급함도 없었습니다.
그저 저의 페이스대로 걷고, 뛰고, 때로는 멈췄습니다.
그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 안에서, 스스로와 가까워지는 기분을 자주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 자유로운 시간은, 명상 속의 ‘비판 없는 수용’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6.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사실 달리기를 하며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이상하게도 몸이 무거워지고, 괜히 피곤해지고, 달리기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루의 휴식 같은 시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더 자주, 더 기꺼이 운동화 끈을 묶게 되었습니다.
명상이 그렇듯, 달리기도 ‘성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시간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느리게 걷기만 해도, 그 시간은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했습니다.
마무리하며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일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점점 더 하루를 정리하고, 마음을 정돈하는 명상의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조용한 저녁 공기 속을 걷거나 달릴 때, 저는 비로소 오늘 하루의 나를 이해하게 되고, 내일을 맞을 준비가 되는 기분이 듭니다.
꼭 호흡을 세지 않아도 좋습니다.
눈을 감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나의 템포로, 나만의 공간에서, 나의 호흡을 느끼며 움직이면 됩니다.
그 자체로도 이미 하나의 명상이 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께서도, 혹시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많을 때
가볍게 산책이나 달리기를 시작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 시간 속에서 마주하는 고요함은, 생각보다 깊고 따뜻할지도 모릅니다.